7·5조 창가. 총 376행.
『불교』 제8호(1925.2)에 국한문 혼용체로 수록되어 있다. 김추계(金秋溪)가 창작한 작품을 김소원(金素園)이 초록하여 투고한 것이다. 추계는 김문세의 호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30세에 요절한 우국지사이다. 당시 여운형·김구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 1990년에 국민훈장 애족장(愛族章)을 서훈하였다. 작자는 항저우[杭州] 도서관에서 『사고전서』를 열람하여 우리나라 역사 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922년 8월 항저우 고려사(高麗寺)를 유람하고 관련 역사를 토대로 이 작품을 저술하였다. 작품이 발표된 후 당시 한국과 중국 불교계의 관심을 이끌어 내었는데, 이후의 중창불사 운동의 경과가 『불교』지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중국 항저우의 폐허가 된 고려사를 방문하여 관련된 역사와 현재의 실태를 노래하고 재건을 다짐하는 내용의 창가이다. 전체적으로 화자와 목동이 등장하여 묻고 답하는 문답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서사─본사─결사의 3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사(1∼10행)는 폐허가 되어 버린 항저우의 고려사 앞에서 목동에게 그 이유를 묻는 내용이다. 본사(11∼346행)는 화자의 물음에 대한 목동의 긴 답변이다. 결사(347∼376행)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화자의 감회를 담았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본사는 총 336행 분량으로 고려사를 둘러싼 의천의 행각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씨줄 날줄이 되어 서술되어 있다. 『사고전서』의 관련 자료를 조사하여 우리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한 저자의 공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본사는 다시 크게 세 단락으로 묶여진다. 본사의 1단락(15∼30행)은 ‘고려국’의 다양한 명칭과 유래를 소개하며 산자수명한 자연을 예찬하고 있다. 2단락(31∼66행)은 기자(箕子), 공자[仲尼], 헌원씨(軒轅氏), 도당씨(陶唐氏) 등 고대에서 ‘중고(中古)’시대에 이르는 동안 고조선, 고구려, 고려, 조선과 가졌던 중국측의 역대 인물을 소개하였다. 3단락은 대각국사 의천의 발자취와 고려사의 내력을 소개하였다. 3단락의 1∼3장(67328구)은 의천의 행적을 순차적으로 기술하였다. 4장(329346구)은 청 건륭 이후 고려사의 내력과 현재의 상황을 소개하였다. 1919년에 신예관이라는 인물이 편액을 다시 달아 복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쇄락하여 공공연한 오해와 무례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결사는 목동의 설명을 다 들은 화자가 반가운 심정으로 절에 들어갔으나 초라한 내부를 확인하고 서러움이 북돋아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고려사를 재건하고 절 한편에 치워져 있는 고려 임금의 소상(塑像)을 다시 봉안하리라는 다짐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7·5조 창가의 대표적인 작품은 최남선의 〈경부철도가〉(1908)와 〈세계일주가〉(1914)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근대문명을 예찬하고 새 시대의 희망을 노래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고려사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한편, 행간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7.5조 창가의 다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작품은 임시정부의 기자인 작가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지은 작품으로 역사 교과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