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학교박물관에서 2003년도에 포천 일동-영중간 도로확포장공사를 계기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은 포천천 동안의 충적대지에 위치한다. 주거지 6동이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철자(凸字)형(1호・2호・4호)과 장방형(3호・5호・6호)이다. 1호와 2호 주거지에는 벽면을 따라 주혈(柱穴)이 정연하게 설치되었다. 3호 주거지에는 모서리와 중앙부에 작고 편평한 돌이 놓여 있고 주혈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초석 위에 기둥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주거지에는 주혈이 정연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주거지 외에도 불탄자리라고 보고된 유구 3기가 조사되었는데 야외노지일 가능성이 높다. 또 구상유구(溝狀遺構) 6기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경질민무늬토기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기종은 단경호가 많다. 모든 주거지에서 경질민무늬토기와 승문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4호 주거지는 경질민무늬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석부, 석촉, 지석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머리부분[鏃頭]은 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자루[莖]는 철로 된 철경동촉(鐵莖銅鏃) 4점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금주리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출토된 화분형토기와 철경동촉의 검토, 또 AMS 측정결과를 근거로 1호・2호・3호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 4호는 기원후 2세기로 파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