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와 구덩이·구상유구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내용
한성백제기의 유구는 4기의 주거지(1호・4호・7호・9호)와 12기의 수혈유구, 구상유구 1기이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에 가까운 타원형인데 규모가 길이 3.9~5.5m 정도의 소형이다. 바닥 중앙부는 비교적 단단하게 처리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다졌는지는 알 수 없다. 9호 주거지에서는 부뚜막 시설과 출입구가 확인되었다. 부뚜막은 점토로 만들어졌다. 출입구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외부로 약간 돌출된 형태이다. 중심연대는 중도식무문토기가 소멸된 점,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와 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가 자비용기(煮沸用器)로 정착되고 새로운 주거지가 채용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3세기 중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세력이 영향을 미친 시기의 주거지는 2기(3호・5호)이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이며 규모는 한변의 길이가 3m 정도로 소형이다. 3호 주거지에는 부뚜막이 설치되었다. 이 시기의 중심연대는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시기를 감안하면 6세기 중반이 상한연대이지만 출토된 토기를 통해서 볼 때 중심연대는 6세기 후반이며 하한은 7세기 이후로 내려가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포천 성동리 마을유적』(경기도박물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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