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주 동천동 도시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도시터이다. 북천의 소금강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경주의 북쪽으로, 도시가 황룡사와 월성이 위치한 중심부에서 점차 외곽으로 확장된 사실을 보여준다. 유구는 7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동-서도로, 수혈, 기단석열, 청동공방지 등과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문지시설, 배수시설, 우물 등이 있다. 이 유적에서 중요한 점은 도로를 포함한 우물, 청동공방지, 건물지 등이 함께 조성됐다는 것으로 왕경의 외곽은 중심부와는 다르게 생산 시설들이 다수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왕경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도시터. 도시유적.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1단계는 7세기 후반경이며, 2단계는 통일신라 말 무렵으로 판단된다. 도로는 동-서방향의 도로 2곳, 남-북방향 1곳 등 모두 3곳에서 조사되었다. 도로는 3차에 걸쳐 사용하였는데, 1차도로는 잔자갈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2차도로는 중앙에 자갈을 깔고 주위에 마사토를 다져 만들었다. 담장시설은 상부가 파괴되어 기초만 남아 있다. 담장폭이 가장 넓은 것은 0.95 m 정도이고 대부분은 0.8m 미만이다. 담장들은 집과 함께 개 · 보수, 증축된 흔적이 있다. 우물은 40여기가 조사되었으며, 일부는 배수시설(排水施設)이 딸려 있다. 깊이는 0.5m 에서 3.5m 정도까지 다양하다. 우물의 위치나 분포로 볼 때 대체로 한 가옥에 하나의 우물이 있었으며 도로에 가까운 담장에 연하여 굴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혈은 46기가 확인되었으며, 바닥에 기와를 깔거나 소토(燒土)가 남아 있는 것, 벽쪽으로 석열을 설치하고 소토로 다짐한 것, 돌로 아궁이를 설치한 것, 기둥구멍이 확인되는 것, 청동생산공방지로 추정되는 것 등이 있다. 청동공방지는 길이 2.65m, 너비 2.20m, 깊이 0.3m 정도로서 수혈유구의 내부 남동모서리에 청동 노(爐)를 설치하였다. 수혈의 남쪽 벽을 제외한 3면의 벽을 1.5㎝ 정도 두께로 황갈색점토를 발라 벽체를 만들었다. 바닥은 적색으로 소토화된 상태인데 단단하게 처리되었다.
수혈의 남동모서리에 붙여서 설치되어 있는 노적은 가로 · 세로 60㎝의 정방형으로 부뚜막처럼 바닥으로 부터 10㎝가량 높게 되어 있다. 노적의 상면으로 부터 직경15㎝의 노를 설치하고 노의 밑면에 서쪽 방향으로 송풍구(送風口)를 마련하여 놓았다. 송풍구의 바닥은 수혈의 바닥보다 더 깊다. 수혈 내부에서는 많은 수의 도가니편과 청동찌꺼기, 와편(瓦片),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으며, 잔자갈 크기의 구리광석과 청동 덩어리들도 수습되었다. 수혈유구의 남쪽편에 부정형(不定形)으로 흑갈색 부식토면이 노출되었고 내부에서는 다량의 도가니들이 출토되었다. 또 소량의 청동찌꺼기와 목탄(木炭)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청동용해로(靑銅鎔解爐)일 가능성이 높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경주 동천동 고대 도시유적-경주시 택지조성지구 내 7B/L-』 (경주대학교 박물관, 2009)
- 『왕경유적Ⅲ -경주시 동천동 7B/L내 유적-』(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연구총서 제 27책, 2005)
- 「경주 동천동7B/L유적내 청동생산공방지」(『영남고고학』 24, 1999)
- 「동천동 도시 유적 ·청동공방지」(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568&idx=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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