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옥곡동유적은 2001년 10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에 의해 2차에 걸쳐 조사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지석묘 1기, 석관묘(石棺墓) 9기, 주거지 278동, 수혈(竪穴) 65기, 기타 유구(遺構) 등 370여기가 조사되었다. 원삼국시대는 목관묘(木棺墓) 6기, 옹관묘(甕棺墓) 6기, 삼국시대 논, 통일신라∼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지 및 관련 유구 약 40여기가 조사되었다.
경산옥곡동유적은 청동기시대가 중심유적으로서 취락과 분묘가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에 이르면 일부의 분묘유적만 확인되는데, 이는 중심지의 이동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즉 원삼국시대에 이르면 경산지역 내에서 유적의 중심이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는 임당유적으로 옮겨갔기 때문일 것이다.
경산옥곡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으로 대표된다. 청동기시대 지석묘 1기, 석관묘 9기, 주거지 278동, 수혈 65기, 기타유구 등 370여기가 조사되었다. 취락의 분포는 남천변을 따라 평행하게 형성되었으며, 지구 경계 밖으로도 계속 연장되고 있다. 취락의 조성시기는 전기∼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지만 주거지 유형별 중복현상이 많지 않았음을 통해 볼 때, 유적지 전체에 주거지의 공간 점유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주거지 중복양상과 유물 출토양상을 검토한 결과, 주거지의 유형별 변천은 1단계 : AⅠ형[노지(爐址)가 2개 이상] 〉AⅡa형[노지가 1개이며 장방형(長方形)] · AⅡb형[노지가 1개이며 방형(方形), 유사방형(類似方形)]─ 2단계 : AⅠ형 · AⅡa형─ 3단계 : AⅡa형 · AⅡb형 · Ba형(장방형)─ 4단계 ; Ba · Bb형(방형) · Bc형(원형)으로 변화한다. 시기적으로는 3단계까지가 청동기시대 전기, 4단계는 후기이다.
원삼국시대는 목관묘와 옹관묘 12기가 조사되었는데, Ⅱ구역의 청동기시대 지석묘 및 석관묘 분포지의 북쪽 가까이에 분포하고 있다. 분묘 내부에서 출토된 주머니호, 조합우각형파수부호, 옹관용으로 사용된 장동옹은 형식으로 보아 기원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중반으로 편년된다. 여기서 조사된 분묘는 경산지역의 충적평야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경산지역 원삼국시대 분묘유적을 대표하는 곳은 임당유적과 신대리유적으로 경산지역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얕은 구릉상에 위치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논, 도로, 건물지, 우물, 수혈유구 등은 유적지내에서 산발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경산옥곡동유적은 지금까지 경산지역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아울러 원삼국시대 목관묘와 옹관묘도 조사되어 임당유적과의 비교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청동기시대 이후 이 일대는 중요유적이 형성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점차 경산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