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산 임당동 토성은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이다. 타원형 또는 땅콩 껍질처럼 중간이 약간 들어간 형태로, 규모는 동서 120m, 남북 350m, 전체 둘레는 950m 정도이다. 해발 59∼65m의 야트막한 임당 구릉의 서쪽 정상과 경사면의 지형에 따라 축조되었다. 이는 이 토성이 방어적인 용도 외에 신라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임을 말해준다. 성의 내부에 지배 정책 관련 시설물들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4세기 초·중반 무렵 신라의 영역 확대에 따라 광역화된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축조된 토성이다.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지배정책과 관련된 성곽. 토성.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토성의 내부에서는 초기철기시대 널무덤(목관묘), 2∼3세기대에 설치된 취락 및 부속유구인 야외 화덕자리(노지)시설, 토기매납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목관묘 이후 단계부터 분묘공간으로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토성의 직하에서는 2∼3세기대에 설치된 주거지들이 확인되었는데, 토성은 이 주거지들을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토성의 영정주 내에서 도질토기편들이 출토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토성의 축조는 와질토기에서 도질토기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5세기부터 축조되기 시작하는 임당동 고총고분군이 능선의 정상부에 입지하지 않고 중간부의 평탄지에 입지하는 것은 먼저 축조된 토성의 범위를 피해서 그 입지를 결정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를 감안해 임당동 토성의 축조를 추정해보면, 그 시기는 대략 4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늦추어 잡아도 4세기 중반경은 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4세기 신라의 토성축조 배경-달성과 임당토성의 예를 통하여-」(장용석, 『 영남고고학 』46, 2008)
- 「4세기 전후 신라의 토성 축조와 그 목적-영남 지역 초기 토성의 성격-」(박성현, 『한국사연구』13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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