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북사리 고분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삼국시대 경산지역 지배층의 암반굴착덧널무덤. 암광목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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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삼국시대 경산지역 지배층의 암반굴착덧널무덤. 암광목곽묘.
개설

자인중·고등학교 교실 증축 및 운동장 정지작업에 필요한 흙을 채토하는 과정에서 2기(1·2호분)의 삼국시대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북사리 65번지 과수원 내에서 1기(3호분)가 확인되었다. 3기 모두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역사적 변천

아직까지 북사리 지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고분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시기적인 변천에 따른 고분의 변화과정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3기 모두 봉토(封土)가 파괴되거나 유실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곽(槨)의 규모,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5-6세기에 축조된 이 지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에서 이보다 이른시기의 무덤인 목관묘(木棺墓) 및 목곽묘(木槨墓)는 아직까지 조사보고된 예가 없다.

내용

3기 모두 암광목곽묘(岩壙木槨墓)이다. 1호분은 거대한 봉토분이었으나 조사전 봉토가 삭평(削平)되고 유구도 일부 파괴된 상태였다. 하나의 묘곽만 조사된 단곽식이지만 유물의 배치상태로 보아 3호분과 같은 주부곽식일 가능성이 높다. 잔존하는 유구(遺構)로 보아 곽의 크기는 길이 395㎝, 너비 180㎝, 높이 120㎝ 정도이며, 장축방향(長軸方向)은 북서-남동향으로 추정된다. 상부(上部)는 개석(蓋石)을 하였으며, 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암반층을 그대로 이용했다.

유물은 피장자의 신변유물과 머리측에 부장(副葬)한 토기들만 출토되었다. 유물의 배치상태로 보아 내부에 목곽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은제과대(銀製銙帶) 1벌, 금제이식(金製耳飾) 1쌍, 삼엽환두대도(三葉環頭大刀) 1점, 삼환두대도(三環頭大刀) 3점, 입주형(立柱形)운주 및 철기와 토기류 등이다.

2호분은 1호분에서 북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학교실습지안에서 발견되었다. 봉토는 유실된 상태였으며, 개석도 파괴된 상태였다. 바닥은 아무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곽의 크기는 길이 400㎝, 너비 100㎝, 깊이 100㎝ 정도이다. 인골이 출토되었으며, 출토상태로 보아 머리는 동쪽에 두었다. 유물의 배치상태로 보아 목곽을 설치한 것으로 보이며, 출토유물은 금제이식 1점, 대도 1점, 철모(鐵矛), 재갈, 철도자, 공부편 및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3호분은 봉토가 남아 있었다. 봉토는 직경 6.5m, 높이 1m의 타원형이다. 봉토 내부에서 1기의 주·부곽(主·副槨)을 갖춘 묘곽(墓槨)이 조사되었다. 주곽과 부곽은 따로 팠으며, 日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곽의 네모퉁이에서 꺽쇠가 출토되어 내부에 목곽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곽 내부에는 머리측에만 토기를 부장했다. 주곽에서는 금제이식 1쌍, 철모, 꺽쇠, 철검편(鐵劍片), 대도(大刀), 재갈, 운주, 토기류, 부곽에서는 철촉(鐵鏃), 등자(鐙子), 행엽(杏葉), 안교(鞍橋), 철제환(鐵製環) 및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징

지금까지 자인면 북사리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봉토분은 3기인데 모두 암반을 굴착하고 내부에 목곽시설을 설치한 암광목곽묘이다. 고분이 축조된 시기는 대체로 삼국시대인 5-6세기 경이며, 1·3호분은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인 부곽과 피장자를 안치하는 공간인 주곽을 별도로 설치한 구조이다. 특히 3호분은 주곽을 서쪽에 부곽을 동쪽에 설치한 특이한 구조이다. 경산지역 대부분의 고분이 주·부곽으로 설치될 경우, 주곽을 동쪽에 부곽을 서쪽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고분의 규모나 출토유물의 질과 양으로 보았을 때, 5-6세기 경산지역의 중심고분군인 임당유적(林堂遺蹟)의 대형분(大形墳)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일대를 대표하는 중심유적의 지배자들 무덤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신라의 고총과 지역집단 -대구·경산의 예』(김용성, 춘추각, 1998)
『경산 북사리 고분군』(영남대학교박물관, 1991)
집필자
장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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