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경부고속도로 동대구-경주구간 확장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실시되었으며, 시굴조사결과 삼국시대 중·대형 봉토분(封土墳)이 30기 이상 분포하고, 층위(層位)를 달리하여 목관묘(木棺墓) 및 목곽묘(木槨墓),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가 수백기 이상 존재하는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위원회의 개최결과 봉토분이 확인되는 휴게소 확장부지는 최대한 보존을 원칙으로 하고, 도로가 확장되는 구간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2003년 4월 13일부터 같은 해 11월 30일까지 실시하였으며, 삼국시대 적석목곽묘와 생활유적 일부가 조사되었다.
시굴조사(試掘調査) 결과 삼국시대 봉토분과 적석목곽묘보다 선행하는 목관묘 및 목곽묘도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고분유적들이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삼국시대에 이르러 당시 경산지역을 구성하는 중요 집단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은 행정구역상 경산시 진량읍에 위치하며, 낙동강 중류의 한 지류인 금호강 유역에 자리한다. 동쪽으로 경주·포항방면의 동해안지역과 서쪽으로 대구·달성방면의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있다. 경산지역 최대유적인 임당(林堂)유적이 남서쪽 7㎞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신상리유적은 1986년 실시한 지표조사(地表調査)를 통해 알려졌는데, 당시 이미 경부고속도로와 경산-하양간 국도에 의해 동-서, 남-북으로 잘렸으며, 경산IC와 이와 연계된 진·출입로 및 경산휴게소 건설로 많은 파괴를 입은 상태였다. 이후 2003년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에 따른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분과 조선시대 생활유적 일부가 조사되었다.
조사는 하행선측(부산방향) 확장구간을 가지구, 상행선측(서울방향) 확장구간을 나지구로 구분하였으며, 하행선의 경우는 지형훼손이 심해 발굴조사의 편의상 3개의 소지구(小地區)(가-Ⅰ·Ⅱ·Ⅲ)로 나누었다. 가Ⅰ지구에서는 삼국시대 목곽묘 2기, 가 Ⅱ지구에서는 적석목곽묘 37기, 목곽묘 3기, 석곽묘 4기, 석실묘(石室墓) 2기, 옹관묘(甕棺墓) 1기가 조사되었다. 가Ⅲ지구에서는 대형분 1기, 목곽묘 11기, 석곽묘 및 석실묘 각 1기가 조사되었다. 나지구에서는 적석목곽묘 12기, 목곽묘 5기, 석곽묘 2기, 옹관묘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중 20호묘는 이혈(異穴)'明'자형 주·부곽식(主·副槨式)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로 가장 대형이다. 내부에서는 토기류와 철모(鐵矛), 유자이기, 재갈, 교구(鉸具), 집게, 환두대도(環頭大刀) 및 이식(耳飾), 다면옥(多面玉) 등이 출토되었다. 봉토분들은 현재 경산휴게소 상행선 부지내에 복원되어 있다. 생활유적은 가Ⅰ지구에서 삼국시대 주거지 2기, 구(溝) 9기, 수혈(竪穴) 12기, 고상식(高床式) 건물지 1기, 주혈(柱穴) 71기, 적심유구(積心遺構) 3기 등이다.
경주지역 중심묘제인 적석목곽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신상리유적에서 적석목곽묘가 처음 출현하는 시기는 5세기 중엽으로 출현배경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경산 임당유적에서 확산되어 채용되었을 가능성인데, 임당유적의 경우는 4세기 중엽부터 5세기 전반까지 고총(高塚)의 내부시설로 적석목곽묘를 채용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고분군을 조영한 집단들이 경주지역의 장송의례(葬送儀禮)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주부곽식의 배치가 경주 사라리나 안계리 등과 매우 유사하고, 이혈명자식의 경우 임당유적과 유사하나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분군은 5-6세기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고분의 규모나 출토유물의 질과 양으로 보았을 때, 경산지역 최대유적인 임당유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일대를 다스린 읍락의 지배자들 무덤이라 판단된다. 특히 다수가 조사된 적석목곽묘는 경주지역의 중심묘제인 점에서 경주지역의 장송의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