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이 위치한 덕천리의 북쪽은 해발 423m의 벽도산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지대가 있으며, 동쪽은 서에서 동으로 이조천이 굽이쳐 흘러 형산강과 합류하면서 넓은 충적대지를 형성한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장방형주거지와 석관묘, 삼국시대의 제철유구, 통일신라시대의 도로 등이 확인되었으며, 조사된 분묘는 석관묘 1기, 목관묘 14기, 토광묘 2기, 목곽묘 122기, 옹관묘 66기이다.
목관묘는 기원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대형과 2세기경에 축조된 소형으로 구분되는데, 대형 분묘는 나무판으로 조립한 관을 사용하였고, 소형 분묘는 나무판으로 조립한 관이나 통나무관을 사용하였다. 유물은 점토대토기·와질주머니호·단경호·철검·환두도·철모·재갈·목걸이·검파두식·유리제의 환옥·마형대구·호형대구 등이 출토되었다.
목곽묘는 밀집 분포하며 중복관계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기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목곽의 주축방향은 모두 동-서 방향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으며, 두향은 동쪽이다. 매장주체부와 평면형태에 따라 장방형목곽묘, 세장방형목곽묘가 조영되었으며, 장∙단축 비율을 통한 평면형태를 볼 때, 동혈주부곽식으로 장방형목곽묘가 주류를 이룬다. 유물은 압형토기· 신선로형토기· 대부호· 노형토기· 환두대도· 유자이기· 철모· 판상철부· 수정제 곡옥· 다면옥· 유리제 금박옥· 환옥 등이 출토되었다.
옹관묘는 모두 토광옹관묘로 목관묘의 묘역에 조영된 것과 독립옹관묘로 구분된다. 목관묘 단계의 옹관묘의 조합방식은 단옹식 3기를 제외하고 57기가 합구식이며, 사용된 토기는 단경호· 파수부발· 발· 장동옹· 대호· 시루· 노형토기 등이다. 옹관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타원형이며, 주축방향은 동-서 방향을 기본축으로 하며 두향은 동쪽이다.
이 지역은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강력한 집단이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경주분지를 중심으로 서쪽은 사라리 유적, 동쪽은 조양동유적, 남쪽은 덕천리 유적, 북쪽은 황성동 유적, 중앙은 탑동유적을 중심으로 세력집단이 분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덕천리 집단이 지닌 위세품으로 검파두식·마형대구·호형대구·압형토기· 다량의 철기류는 당시 덕천리 피장자들의 우월한 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