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리 129호분으로 불리는 서봉총(북분)과 연접분 혹은 표형분으로 보고된 것이 데이비드총(남분)이다. 서봉총은 1926년 경주철도 기관고 부지의 조성을 위하여 토석을 제공하기 위하여 발굴조사한 결과, 금관을 비롯하여 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당시 원형분이었던 서봉총의 남쪽 호석열 부근에서 남쪽부에 위치한 고분의 호석열이 치고 들어온 상태를 확인하고 서봉총이 선축되고 데이비드총이 후축된 표형분 혹은 연접분임을 확인하였다.
경주데이비드총은 서봉총 발굴 당시 존재가 확인은 되었지만 민가가 있어 조사를 착수하지 않고 있다가 1929년 당시 상해의 홍콩은행 행장이던 유대계 영국인 퍼시발 데이비드(Percival David, 1892-1964)경이 남분 발굴자금을 기부하겠다는 편지와 3천엔 수표를 보내와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분을 기부자 이름을 따서 데이비드총이라 불리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하였는데, 발굴 도중에 우메하라는 중국의 화북지방으로 조사를 떠나고 고이즈미가 조사를 완료하였다. 광복후 고이즈미는 데이비드총 관련 발굴 자료는 우메하라가 보관 하였다고 하나 현재도 관련 기록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메하라의 사진자료에 의하면, 고분의 직경은 서봉총과 비슷한 36m로 추정되고 적석이 쌓여 있으며, 내부는 목곽의 함몰로 움푹하게 들어가 있었다. 적석부의 바닥면은 작은 돌을 깔고 그 위에 세장한 사각형의 목곽을 북서-남동방향으로 축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된 유물은 ‘우메하라 고고자료’에 의하면 소형의 금제 세환이식 1쌍, 목부위에 곡옥과 유리옥으로 장식한 목걸이, 2쌍의 금제 및 금동제 팔찌·반지 등 장신구류와 발형기대를 비롯한 도질토기류, 철제솥 2점·초두·삼지창 등이 확인되었다.
경주데이비드총이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는 이루어졌지만 관련 도면기록이나 유물의 출토 전모와 수량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일부 확인된 사진자료와 유물을 통해 분석해 볼 때, 무구류가 거의 없는 점, 장신구류가 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축조연대는 서봉총과 비슷한 시기인 6세기 전반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