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분은 입구가 유실되었으나 굴식[橫穴式] 혹은 앞트기식으로 추정되며, 남쪽과 동쪽에서 확인된 분구의 직경은 11m이다. 돌방의 규모는 잔존 길이 3.5m, 너비 1.6m, 높이 1.6m로 장축방향은 북-동이다. 벽석은 단벽의 경우 할석으로 10단 가량 직립되게 쌓았고, 양 장벽은 위로 갈수록 내경하게 쌓아 돌방의 상부 폭이 1m로 줄어든 상태에서 개석을 덮었다. 바닥 시설은 전면에 걸쳐 손바닥 크기의 편평한 냇돌을 2∼3겹 깔았으나, 추가장은 교란으로 인하여 정확한 횟수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동지금장제 귀걸이(이식) 9점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4회 이상 행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2호분은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로서 봉분 지름이 약 6.5m이며, 석실의 장축은 동-서방향이며, 반지하식 구조로 할석을 쌓아 만들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나 서단벽은 직선으로, 동단벽은 곡선으로 처리된 것으로 보아 서단벽이 횡구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돌방의 크기는 길이 2.6m, 너비 1.1m, 높이 75㎝로 벽면의 축조는 할석으로 횡평적하여 쌓아 올렸다. 바닥은 전면에 손바닥 크기의 편평한 냇돌을 깔았으나 남장벽 일부에는 밤알 크기의 잔돌을 한겹 더 깔았다.
출토된 유물 중 금동관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우측에 동제의 요패와 철탁이 놓여 있었다. 북장벽에 검초모양의 청동제품, 가는고리 귀걸이(세환이식), 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금동관의 서쪽 끝에서 피장자의 하악골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금동관을 착장하고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토기는 신라양식( 신라토기)을 따르고 있으나 재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긴 목항아리 · 굽다리 접시(고배) · 접시(배)와 가락바퀴(방추차)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금동관은 신라양식으로 대륜에 ‘山’자형 입식 4개를 붙인 것으로 입식의 상하가 분리되지 않고 붙어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양식은 신라 후기에 해당되며, 단양 하리, 경주 등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왕권이나 지방 수장층 표식이 아닌 무속과 관계된 상징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