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즐문토기·석기·무문토기 등이 출토된 집터. 바위그늘.
개설
내용
주거지는 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이루며, 바닥에는 30㎝ 정도의 하천석을 깔아 상면을 마련한 구조이다. 규모는 장축 3.7m, 단축 2.5m 정도이며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1m 정도이다. 주거 내부에서는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토기)를 비롯하여 돌살촉(석촉) · 숫돌 · 돌도끼(석부) · 고석 · 조개팔찌 · 골각기 등이 출토되었다. 노지는 10㎝ 전후의 냇돌을 집석한 구조이며 형태는 원형을 이룬다. 크기는 직경 75㎝~100㎝ 정도이다. 바위그늘 퇴적층은 신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크게 4개층으로 구성되며 최상층인 1층에서는 청동기시대 말기의 삼각구연(三角口緣)무문토기를 중심으로 삼한 · 삼국시대 와질토기와 도질토기 · 연질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2~4층에서는 신석기시대 남부지역의 조기에서 말기에 성행했던 덧무늬토기(융기문토기), 압인문토기, 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4층에서는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바 없는 조질의 즐문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토기의 제작기법과 문양, 기형에서 기존의 토기와 구분된다는 점에서 오진리식토기로 불리고 있다. 유적의 층위와 토기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조기(서기전 5000년 전후)의 융기문토기보다 앞선 시기의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각 문화층에서는 마제석촉, 석부, 간돌도끼(타제석부), 숫돌, 갈판, 그물추(어망추), 박편석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오진리 바위그늘은 즐문토기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신석기 조기 이전부터 말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적의 성격과 유구의 규모 등으로 보아 어로나 수렵 활동 등을 위한 일시적인 거주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청도 오진리 암음유적』 (부산대학교박물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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