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정원을 말한다. 상층부의 현재지표는 하층부에 비해 50㎝ 이상 높게 형성되어 있지만, 신라시대의 구지표에 비해서는 상당 부분 삭평 또는 결실된 상태이다. 하층부는 연못을 중심으로 형성된 원지 영역과 그 북쪽의 건물지 영역 등으로 크게 나뉘며, 연못 동쪽에도 별도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원지 유적은 조사 결과 상·하로 중복된 연못 호안 석축, 입수로, 배수로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선덕여왕 3년(634)에 분황사의 동쪽에 동지(東池)가 조성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동지로 판단할 수 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정원.
개설
내용
호안석축은 1·2차 축대가 상하 중복되었으며, 1차 축대는 지반을 따라 직선과 꺾임을 반복하면서 천석으로 허튼층 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으며, 축대 앞쪽에는 사력층을 부설한 위에 회갈색 점토층을 피복하여 지표를 형성하였다. 2차 축대는 1차 축대가 폐기된 이후 대형의 할석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원지 유적의 동쪽 경계선을 따라서는 천석을 사용한 별도의 수방용 축대를 축조하였다. 그리고 못 내부에서는 동시에 함몰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초석 · 와당 · 기초용 잡석 등 각종 건물부재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축대 상층부에는 누정형 건물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원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하여 편년을 검토해 보면, 와당류는 수막새와 암막새가 경주 분황사 금당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동일한 거푸집에서 찍은 것으로 판명된 유물들로 판단할 때, 8세기가 중심연대로 생각된다. 또한 토기류는 7세기후반에서 8세기대에 사용된 인화문토기류가 주류를 이루나 7세기 초반의 토기도 하층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원지의 존속 기간이 상당히 길었음을 시사해 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경주 인왕동 왕경유적Ⅲ』(성림문화재연구원, 2015)
- 『문화유적분포지도-경주시-』(국립경주박물관·경주시, 2008)
- 『경주 구황동황룡사전시관 건립부지내 유적』(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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