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장수군 봉서-척동간 도로확 · 포장공사 구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시굴조사에서 모두 2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 그 결과 대가야 등 가야세력이 백두대간을 넘어 섬진강유역으로 진출하였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섬진강 중류지역인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봉서리 척동마을 동쪽에 자리한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와 장수군 경계에 거녕성이 자리한 성산이 있는데, 이 산의 서쪽과 서북쪽 경사면 하단부에 삼국시대 고분군이 폭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일대는 백제 거사물현의 행정치소로 통일신라시대 지방군을 10정으로 정비할 때 거사물정이 설치될 정도로 전략상 요충지를 이루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의 자고개[尺峙]를 넘어 장계분지와 장수분지, 서쪽으로는 호남정맥을 넘어 영산강유역,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치재를 넘어 아영분지 및 서부경남지역, 북쪽으로는 금강 혹은 만경강유역으로 나아가는 여러 갈래의 내륙 교통로가 교차하는 곳이다.
1호분은 봉토의 상단부에 도굴로 생긴 구덩이를 통해 천정석이 노출된 상태였다. 묘광은 생토층을 수직으로 파내어 마련하고 그 안에 장방형의 석곽이 축조되었다. 모두 10매의 천정석은 도굴의 피해를 입어 서쪽에서 유실된 2매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원상대로 놓여 있었다. 석곽의 장벽인 동벽과 서벽은 모두 할석을 이용하여 하단부에 큰 할석을 놓고 그 위로 올라가면서 소형 할석을 가지고 5∼6단 높이로 쌓았다. 단벽은 바닥에 할석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가로 쌓기 방식을 적용하여 4단 높이로 축조되었다. 바닥면은 생토면을 편평하게 다듬어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석곽의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되게 동서로 두었다. 유물은 구연부가 일부 파손된 대부장경호가 출토되었다. 석곽묘의 규모는 길이 372㎝, 폭 112㎝, 높이 118㎝이다.
섬진강 중류지역에서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가 조사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장수군 산서분지 일대에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토착세력의 실체와 그 발전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고분으로 유구 및 유물의 속성을 근거로 6세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