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후기(서기전 2,500년 전후)의 대규모 조개더미유적으로 유적 환경과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어패류 등 해양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단기간에 점유하면서 형성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각 층위에서는 즐문토기 · 방추차 · 어망추 · 석촉 · 석영제석기 · 박편석기 · 골각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과 수혈주거지 2기와 노지 8기가 검출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서해 도서 및 해안지역 패총유적 학술조사 일환으로 2002년도 발굴조사 되었다. 유적은 간조시 연평도와 연육되는 작은 무인도인 모이도의 북서단부에 위치하며, 42m 산봉우리의 기저부가 바다와 접하는 부분에서 C자상으로 만곡하는 부분에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퇴적층의 두께와 분포범위로 보아 서해안지역 최대의 조개더미이나 주변의 환경적 요인으로 훼손이 심한 편이다.
조개더미는 굴 껍질을 중심으로 퇴적되어 있으며 층위는 표토층을 포함 12개 층으로 세분된다. 가장 두꺼운 부분은 6m정도이며, 각 층위에서는 주거지 2기 · 노지 8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즐문토기 · 석기 · 골각기 · 동물유체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2기가 조사되었는데, 구조는 원형의 수혈주거로 바닥에는 점토를 얇게 깔고 벽면에 3060㎝ 정도의 활석을 세워 벽체를 만든 형태이다. 주거 바닥 중앙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돌을 돌린 위석식노지가 설치되어 있다. 주거지의 규모는 직경 360370㎝, 깊이 50㎝ 정도이다. 주거 내부에서는 어류뼈와 즐문토기 · 석제 어망추 · 석영제석기 · 골각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후기의 특징적 문양인 횡주어골문 · 단사선문 · 사선문 · 횡선문 · 격자문 등이 시문된 즐문토기 형식과 점열문이 장식된 토제 방추차 · 숫돌 · 석제 어망추 · 석촉 · 박편석기 · 골제 자돌구 · 골제[骨刀] 등이 있다. 옹진모이도조개더미는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형성 시기와 존속 기간, 유적의 성격 등이 불명확한 점도 있으나 퇴적층에서 출토된 즐문토기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후기의 어느 시점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패각의 양이 많고 출토 유물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어로활동이나 패류 채취 등 해양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점유했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옹진모이도조개더미는 서해 도서지역의 패총문화뿐만 아니라 신석기인들의 생계와 어로활동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