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달사는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열전(列傳)제(第)10 궁예(弓裔)조에 따르면, 헌안왕(또는 경문왕)의 아들이었던 궁예가 신분을 숨긴 채 살다가 10살이 될 무렵 세달사로 출가했는데, 그곳이 흥교사라는 기록이 있어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탑상(塔像)제(第)4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 觀音正趣調信)조에도 "옛날 경주가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지금의 흥교사이다)의 농장이 명주 내리군에 있었다"고 하여 어느 시점에 사찰명칭이 바뀌었음이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흥교사는 강원도 영월군 태화산에 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 대략적인 위치는 가늠할 수 있다.
세달사와 관련된 인물은 궁예 이외에 전하지 않는다. 사찰과 관련된 기록도 소략하여 사세(寺勢) 등의 파악이 어려우나, 궁예가 처음 출가한 사찰이라는 점에서 그의 행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 1083-1번지 흥교분교 일대가 절터로 추정된다. 1980년대부터 금동불상과 청동여래좌상이 발굴된 바 있고, 흥교(興敎)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는 등 고고학적 증거로서 확인된다. 건물터, 계단식 석축 등 총 17곳의 유구지가 발견되었다.
유물이나 유적의 추가 발굴을 통해 세달사(흥교사)의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점이 의미있으며, 신라 말 고려 초 영월지역의 불교계 동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