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문서는 중국 서부 감숙성의 돈황시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석굴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와 관련된 고문서이다. 돈황시 남동쪽 외곽 20㎞ 지점에 위치한 석굴에서 5만 점 이상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13,700여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5천여 점,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자료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돈황학’이라 불릴 만큼 학술적인 성과를 쌓아 가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고구려와 발해 등 고대 한반도와 관련된 기록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중국 감숙성 돈황시 남동쪽 외곽 20㎞ 지점에 위치한 석굴 중 17호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된 고문서를 지칭하며 수량이 5만점 이상에 이른다. 「중수천불동삼층루공덕비기(重修千佛洞三層樓功德碑記)」에 따르면 중국 청나라 말기인 1900년에 도사(道士) 왕원록(王圓籙, 18491931)이라는 인물이 굴을 관리 청소하던 중 발견한 것으로 전한다. 이 무렵 아시아로 침략을 확대하던 제국주의 열강의 영향이 이곳에도 미치게 되었는데, 프랑스의 동양학자로 베트남의 프랑스 극동학원 교수였던 폴 펠리오(18781945), 헝가리 출신의 영국 탐험가 마크 A. 스타인(18621943), 일본 교토 서본원사(西本願寺)의 학승(學僧)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 등이 각기 이끈 탐험대가 방문하여 무차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하여 갔다.
펠리오는 1910년 자신이 수집한 문서들을 파리 국립도서관에 기증하였는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의 오타니는 귀국 후 사찰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주지를 사임하였는데, 이 때 돈황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 그 가운데 일본 효고현 고베[神戶]의 별장 이락장(二樂莊)에 보관되었던 일부 자료를 광산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가 구입한 후, 1916년 무렵 자신과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의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게 조선 광산채굴권을 얻기 위해 기증한 것으로 전한다. 이후 우리나라가 광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자료를 미쳐 반출하지 못하였으며,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서 가운데 일부에서는 고대 한반도와 관련된 기록들이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1283 문서(Pelliot tibetain 1283)에 Ke'u-li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당시 투르크계 사람들이 고구려를 Mug-lig로 불렀다는 사실 등을 토대로 하여 고려(高麗)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서의 작성연대가 786년~848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되어 고구려 멸망 이후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동시대 기록에서 일본이 발해를 고려라 칭했고, 당 역시 발해를 고려라 칭했던 점을 고려할 때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지칭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돈황문서는 발해가 고구려 계승국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대표적 성씨인 김씨를 칭한 인물들도 보인다. 김유나(金維那)와 김법률(金法律)이 그들인데, 유나는 사찰의 사무를 관장하는 직책의 하나이며, 법률은 토번이 돈황을 점령하던 시기에 있었던 승관명(僧官名)으로 사원의 중견 승려에게 수여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돈황지역에서 활동하던 신라계 인물들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들의 행적에 유의해서 생각해 본다면 8세기 말부터 11세기 초에 고대 한반도의 인물들이 내륙아시아의 불교도시 돈황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지속적인 사회 · 문화적 교류가 진행되었음을 알려준다고 하겠다. 이밖에도 '발해 고공(高公)'이라는 인물도 관심을 끌지만, 중국 산동성 발해군에 본관을 둔 발해 고씨 출신으로 파악해 발해와의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돈황에서 출토된 고문서 등 주요 자료는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13,700여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5천 여점,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 수집품 5천여 점 가운데 일부가 소장되어 있다.
돈황에서 출토된 주요 문헌들은 기존의 정사류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당시의 예술과 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과 시대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돈황에서 출토된 자료와 유물을 중심으로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돈황학’이라 불릴 만큼 학술적인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더욱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과 같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소중한 자료도 있어 해당 시대를 연구하는 데 바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