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10구체 향가 「안민가」·「찬기파랑가」 등을 저술한 승려.
생애
활동사항
경덕왕이 차를 한 잔 부탁하자 곧 차를 달여서 주었는데, 차의 맛이 독특하고 찻잔에서도 특이한 향이 진하게 풍겼다. 경덕왕이 기파랑을 찬민한 찬기파랑가를 언급하며, 자신을 위해서도 백성을 편안히 다스릴 수 있도록 향가 한 수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자 안민가를 지었다.
향가의 내용 중에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라는 표현이 있는데, 유교적 충군사상이나 정명사상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어 당시 유교와 불교의 사상적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법명이 충담사라는 점도 의미있는데,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승려’ 정도로 뜻풀이되므로 왕권과 국가의 안정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인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가 앵통을 메고 차를 달였다는 사실에서 승려를 중심으로 다도 문화가 상당히 넓게 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흥덕왕 3년조에 당나라에 갔던 사신 대렴(大廉)이 차나무 종자를 가지고 오자 지리산에 심게 했다는 기록보다 반세기 앞선다. 물론 선덕여왕대부터 차가 있었다고 한 기록도 부가되어 있음을 볼 때, 흥덕왕대 차나무 종자의 도입은 다도문화에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겠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정치사회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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