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의 경주고적발굴조사에서 시행한 월성해자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신라 통일기 무렵의 목간 21점을 말한다. 목간은 월성해자의 뻘층에서 발견되고 있어 목간 폐기장소로 월성해자가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성해자 출토목간은 안압지 출토목간과 달리 시기를 알 수 있는 절대연대가 표기되어 있지 않아 함께 출토되는 유물들의 연대추정을 통해 제작이나 활용 시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2호 목간에는 '전대등(典大等)'이 기록되어 있다. 전대등은 품주(稟主)의 전신으로 진흥왕 26년(565)에 설치되어 진덕여왕 5년(651)에 집사부로 개칭된 바 있어 목간이 사용되었던 시간영역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외에도 해자에서 출토된 토기와 수막새 기와 등을 통해 볼 때 목간은 대략 5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까지의 시기에 제작 및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목간 중 주목받는 것은 2호목간으로 묵서자체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 문서행정의 일단을 보여준다. 묵서 내용중 '대오지랑(大烏知郞)'이라는 관등명은 제15관등인 대오를 가리키는 것으로 목간의 연대를 단양적성비(550년경) 단계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월성해자 출토목간은 대체로 문서목간, 부찰목간, 습서목간 등으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보존처리가 완료된 이후 적극적인 판독과 고찰이 이어졌으며, 출토지와 묵서내용을 통해 고대 일본의 목간과도 비교를 하여 변화상을 도출하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월성해자 출토목간은 신라 통일기 무렵의 문서행정을 이해하는 서사자료로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