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천비 묘지명은 고구려 연개소문의 후손으로 당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죽은 천비(708~729)의 일생을 기록한 묘지명이다. 1926년 중국 하남성 낙양시에 있는 소위 삼녀총의 서쪽 봉분에서 발견되었다. 크기는 가로 세로 모두 60㎝로 정방형이다. 묘지명은 천비의 아버지인 천은이 지었으며, 25행, 569자이다. 내용은 묘주의 성품, 출신과 선조, 관력, 죽음과 장례에 대해 기록하였고, 끝에 묘주를 추모하는 명을 기록했다. 묘지명은 고구려 연개소문 가문이 당 현종 무렵까지도 당에서 계속 가문을 유지하였으며, 관직에도 진출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의
고구려 연개소문의 후손으로 당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죽은 천비(708~729)의 일생을 기록한 묘지명.
개설
묘지명은 천비의 아버지인 천은(泉隱)이 지었으며, 25행으로 이루어졌고, 행당 25자를 해서체로 써서 새겼는데 모두 569자이다. 묘지명의 제작은 천비가 죽은 당 현종 개원 17년(729) 에서 4년이 지난 개원 21년(733) 10월 16일 무덤을 낙양의 망산에 있는 천씨 가문의 선영으로 이장하면서 만든 것이다. 낙양의 천씨 가문의 선영에는 천비의 조부인 천헌성(연헌성), 증조부인 천남생(연남생)의 무덤이 있었는데, 천남생의 무덤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천헌성 무덤, 서쪽에는 천비의 무덤을 만들었다. 이 세 무덤을 낙양 사람들은 삼녀총(三女塚)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용
묘지명 첫머리에 기록한 성품은 타고난 행실이 아름답고 바르며, 예의와 법도를 지킬 줄 안다고 하여 칭송하고 있다. 출신은 당시 당나라 수도인 장안성의 만년현 사람으로 이름이 비(毖), 자가 맹견(孟堅)이라 하였다. 선조는 증조부가 특진(特進) 변국(卞國) 양공(襄公) 남생(男生)이며, 조부는 좌위대장군(左位大將軍) 변국(卞國) 장공(莊公)인 헌성(獻誠)이며, 부친은 광록대부(光祿大夫) 위위경(衛尉卿) 변국공(卞國公) 은(隱)이라고 밝히고 있어 비록 당의 수도 장안성 만년현 사람이지만, 선조가 고구려 연개소문의 맏아들인 천남생이며 그의 직계 증손자임을 알 수 있다.
묘주의 나이 2세(709) 때 치천현(淄川縣) 개국남(開國男)의 봉작을 받았고 얼마 안있어 치천현 개국자로 승진이 되어 식읍 400호를 받았고, 효기위(驍騎尉)를 제수받고 태묘재랑(太廟齋郞)이 되었는데 모두 음보(蔭補)에 의한 것이었음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변방의 일로 선덕랑(宣德郞)에 제수되었는데, 변방의 일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선덕랑이 정7품 문관인 것으로 보면 군사에 관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는 그가 곧 과거에 급제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는 보장왕의 외손이며 당시 태자첨사였던 태원공 왕위(王暐)의 사위가 되었고, 문무에 능하여 황제를 시위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 현종 개원 19년(729) 9월 4일 22세를 일기로 경조부 즉 당 장안성의 흥안리 집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장안에 우선 무덤을 만들었으나, 4년 뒤인 733년 10월 16일에 낙양의 선영이 있는 망산으로 이장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 증조부인 천남생과 조부인 천헌성의 무덤 곁에 묻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기록하였다. 묘지명 마지막은 부친인 천은이 갑자기 아들을 잃은 슬픔을 탄식하는 명을 지어 마무리하였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洛陽出土石刻時地記』(郭培育‧郭培智, 大象出版社, 2005)
- 『唐代海東蕃閥誌存』(羅振玉, 1937)
- 「천비묘지」(권덕영,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 「천비묘지명」(박한제,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Ⅰ, 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 「洛陽,西安出土北魏與唐高句麗人墓志及泉氏墓地」(趙振華, 『洛陽古代銘刻文獻硏究』, 三秦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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