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 ()

고대사
작품
신라 하대 진성여왕이 당(唐)의 강서대부(江西 大夫) 고상(高湘)에게 보낸 장(狀).
정의
신라 하대 진성여왕이 당(唐)의 강서대부(江西 大夫) 고상(高湘)에게 보낸 장(狀).
구성 및 형식

최치원이 지은 4편의 장(狀)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전기 서거정이 편찬한 『東文選』(권47)에 전한다. 여기서 '장'은 자신의 뜻을 풀어놓은 형식의 글을 말한다.

내용

발해와 신라는 상호 군사적 대립에 더하여 외교적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특히 발해와 당이 친선관계로 전환하면서 그 모습이 두드러졌다. 당시 당은 주변국을 대상으로 빈공과라는 시험제도를 시행하였는데, 신라와 발해가 수석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872년 발해의 오소도와 신라의 이동이 당사자였으며, 30여 년이 흐른 뒤인 906년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과 신라 최언위 사이에 다시 한 번 성적으로 인한 자리다툼이 일어났다.

발해를 문화적으로 낮게 인식하던 신라와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발해의 문화적 우열 경쟁이 낳은 외교적 사건으로서,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쓰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문장 속에 "저 고구려가 지금 발해가 되었는데"라는 표현이 있어,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가로 인식하던 당시 신라 지식인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관련 원문과 번역은 아래와 같다.

[원문]

昔貞觀中 太宗文皇帝手詔示天下曰 今欲廵幸幽薊 問罪遼碣 盖爲句麗獷俗 干紀亂常 遂振天誅 肅淸海徼 武功旣建 文德聿修 因許遠人亦隨貢士 以此 獻遼豕而無媿 逐遷鸎而有期 惟彼句麗 今爲渤海 爰從近歲 繼忝高科 斯乃錄外方慕善之誠 表大國無私之化 雖涉於賤鷄貴鶴 或類於披沙揀金 靖恭崔侍郞放賓貢兩人 以渤海烏昭度爲首 韓非同老聃之傳 早已難甘 何偃在劉瑀之前 其實堪恨 縱謂簸揚糠粃 豈能餔啜糟醨 旣致四隣之譏 永貽一國之恥 伏遇大夫手提蜀秤 心照秦臺 作蟾桂之主人 顧鷄林之士子 特令朴仁範 金渥兩人 雙飛鳳里 對躍龍門 許列靑襟 同趨絳帳 不容醜虜有玷仙科 此實奉太宗逐惡之心 守宣尼擇善之旨 振嘉聲於鼇岫 浮喜氣於鯷溟 伏以朴仁範苦心爲詩 全渥克己復禮 獲窺樂鏡 共陟丘堂 自古已來 斯榮無比 縱使糜軀粉骨 莫報深恩 惟當谷變陵遷 永傳盛事 弊國素習先王之道 忝稱君子之鄕 每當見善若驚 豈敢以儒爲戲 早欲遠憑書札 感謝眷知 竊審烟塵驟興 道路多阻 未伸素懇 已至後時 空餘異口同音 遙陳善祝 雖願揮毫頌德 難盡微誠 惟望早離避地之遊 速展濟川之業 永安區宇 再活烝黎不獨海外之禱祠 實爲天下之幸甚

[번역]

옛날 貞觀 연간에 太宗 文皇帝가 친히 조서를 내려 천하에 반포하기를 “지금 幽薊를 순행하여 遼碣의 죄를 물으려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개 고구려의 난폭한 습속이 기강을 범하고 강상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엄을 떨쳐 하늘의 주벌을 행하고 바닷가를 숙청하였는데, 일단 무공을 세우고 나서는 문덕을 닦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먼 나라 사람들도 貢士를 따르도록 허락하였으므로, 부끄러울 것 없이 遼豕를 바치면서 遷鸎의 뒤를 따라갈 기약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저 고구려가 지금 발해가 되었는데, 근년에 들어 계속하여 高科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善을 사모하는 외방의 정성을 가상히 여기고, 사심없는 대국의 교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록 닭을 천하게 여기고 고니를 귀하게 여기는 혐의가 있다고 할지라도 어쩌면 모래를 헤치고 금을 가려내는 일과 같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공 최시랑(崔侍郞)이 빈공과에서 2인의 합격자를 발표할 적에 발해의 烏昭度를 수석으로 뽑았다. 韓非가 老聃과 같은 列傳에 있는 것도 예전부터 감수하기 어려웠으니, 何偃이 劉瑀 앞에 있었던 것은 기실 한스럽게 여길 만한 일이다. 키로 까불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서 날린다고도 하지만, 어떻게 술지게미를 먹고 薄酒를 마시며 함께 취할 수야 있겠는가. 이미 四隣의 조롱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요, 길이 한 나라에 수치를 끼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대부가 손에 蜀稱을 쥐고 마음은 秦臺로 비춰 보며 蟾桂의 주인이 되어 계림(신라)의 士子를 돌아보았다. 그리하여 특별히 朴仁範과 金渥 두 사람으로 하여금 봉리에서 쌍으로 날게 하고 용문에서 짝지어 뛰게 하면서 청금의 대열에 끼이는 것을 허여하고 강장에 똑같이 나아오게 한 반면에, 추한 오랑캐(발해)는 용납하지 않아 仙科에 흠집을 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악을 몰아내려 한 태종의 마음을 받들고, 선을 택하게 한 宣尼의 취지를 지킨 것으로, 鼇岫에 아름다운 명성을 떨치고 鯷溟에 기쁜 기운을 들뜨게 한 쾌거였다.

삼가 살피건대, 박인범은 고심해서 시를 지어 樂鏡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고, 김악은 극기복례하여 丘堂에 함께 올랐으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영광에 비할 것은 있지 않았다. 가령 몸이 부서지고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깊은 고마움을 갚을 수가 없을 것이요, 골짜기가 변해서 언덕이 되도록 영원히 성대한 일로 전해질 것이다.

폐국(신라)은 본래 선왕의 도를 익혀 외람되게 군자의 고장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언제나 선한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며 반겨야 하는데, 어떻게 감히 선비를 가지고 희롱하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일찌기 서찰을 멀리 보내 돌보아 준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했으나, 삼가 살피건대 전란의 먼지가 갑자기 일어 길이 많이 막혔기에, 평소의 간절한 소원을 풀지 못한 채 이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부질없이 이구동성으로 멀리서 축원하는 말만 늘어놓을 뿐, 붓을 휘둘러 송덕하는 글을 써 보고 싶어도 미천한 마음을 이루 표현하기가 어렵다.

오직 바라건대, 피난하는 땅에서 유력하는 일을 얼른 그만두고, 濟川의 功業을 속히 펴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온 세상을 길이 편안하게 하고 만백성을 다시 소생시켜야 할 것이니, 이는 해외 소방(신라)에서 기원하는 일일 뿐만이 아니라, 실로 천하의 그지없는 다행이 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은 신라와 발해의 치열한 외교 경쟁을 잘 보여주며, 최치원의 뛰어난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계원필경집』
『동문선』
『최문창후전집』
『발해국지장편』 (김육불, 화문서국, 1934)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 연구』(이문기, 학연문화사, 2015)
『발해정치외교사』(김종복, 일지사, 2009)
『최치원의 사회사상 연구』(장일규, 신서원, 2009)
『신라하대 왕위계승 연구』(김창겸, 경인문화사, 2003)
『발해의 지배세력연구』(임상선, 신서원, 1999)
『나말려초 정치사회와 문인지식층』(전기웅, 혜안, 1996)
『발해의 대외관계사』(한규철, 신서원, 1994)
「발해 대외관계의 전개와 성격」(김은국, 중앙대 박사학위논문, 2004)
한국고전종DB(www.db.itkc.or.kr)
집필자
한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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