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해안 일대에 있었던 8개의 소국이 가야를 침략하여 일어났던 사건.
내용
이 사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점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첫째는 포상팔국 전쟁이 일어난 시기와 성격에 대해서이다. 사료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3세기 초 해상교역권을 둘러싼 대립이 빚어낸 사건으로 보는 설이 있다. 반면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에서 3세기 말∼4세기 초, 해안의 가야국들이 교역권 쟁탈과 농경지 확보를 위해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설도 있다. 그리고 6세기 후반 이후 신라에 이미 망한 여러 나라들 중 서남 지역 가야세력의 반격으로 보는 설 등이 있다.
둘째는 전쟁 대상국의 문제이다. 기록에 따라 전쟁의 대상국이 가라와 아라로 달리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에 따라 가라는 아라의 오기(誤記), 또는 그 반대로 보는 관점이 있다. 대상국을 가라로 보게 되면 포상팔국이 연합하여 김해지역 가야세력을 공격하는 것이 되고, 아라로 보게 되면 함안지역의 가야세력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포상팔국의 위치 비정 문제이다. 확인되는 다섯 개 국 가운데 골포국과 고자국, 사물국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찬자가 ‘지금(고려)의 합포(合浦), 고성(固城), 사주(泗州)’라 한 바도 참고 되어 비교적 논난없이 비정된다. 또한 칠포국도 오늘날 칠원으로 비정함에 이견이 없다. 따라서 골포국, 칠포국, 고자국, 사물국은 지금의 창원시 마산합포·회원구, 함안군 칠원면(칠서·칠북면 포함), 고성군 고성읍, 사천시 사천읍 등으로 비정된다. 보라국의 경우, 『삼국유사』 찬자는 ‘아마도 발라(發羅)로서 지금(고려)의 나주(羅州)가 아닌가?’하고 있다. 만약 『삼국유사』 찬자의 추측이 맞는다면 포상팔국의 분포 범위는 전라남도 해안을 포함하게 된다. 나머지 3국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포상팔국 전쟁과 지역연맹체」(백승옥, 『가야의 포구와 해상활동』, 2011)
-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 -수로집단의 성격과 포상팔국의 난을 중심으로-」(백승충, 『부대사학』 13, 1989)
- 「4세기 가야사회의 교역체계의 변천」(이현혜, 『한국고대사연구』 1, 198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