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성산현(城山縣)'이 보이지 않아 지방관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건녕 2년(895)이라는 절대 연대가 표기되어 있으므로 신라하대 지배체제 이완에 따른 지방세력의 독자적 움직임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비면에 세로 2행에 7글자씩 "乾寧二年乙卯年 前城山令裵零崇(건녕 2년 을묘년 전 성산령 배영숭)"이라 새겨져 있다. 비면의 판각 상태는 양호한 편이어서 해독하는데 큰 어려움 없으나 지명이나 인물과 관련된 기록이 없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신라 초기 6촌 설화와 관련된 배씨 가문의 활동과 신라 하대 다양한 세력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는 금석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