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의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도발하는 한편 식민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 자본의 과잉 중복 투자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농공병진(農工竝進)’이라는 새로운 정책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경성부도 이 방침에 따라 상공업 진흥을 위한 조사 연구 기관을 설치하였다.
경성부산업조사회는 경성부 관리와 미야바야시 야스시(宮林泰司), 박영근(朴永根) 등 유력한 민간 상공업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제1부 기본, 제2부 상업, 제3부 공업의 3부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조사 결과는 보고서로 출판되었는데, 『工場工業ニ依儿生産狀況調査』(1934), 『配給機關ニ關スル調査 (市場丿部)』(1936), 『鐵工業ニ關スル調査』(1936), 『織物工業ニ關スル調査』(1937) 등이 있다.
경성부산업조사회는 1938년까지 매년 개최되었으나 중앙 집중적 전시 통제 경제 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