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개창 직후부터 서울의 포목상들은 취급 품목에 따라 선전(縇廛), 청포전(靑布廛), 포전(布廛), 백목전(白木廛) 등 각전(各廛) 도중(都中)에 나뉘어 소속되어야 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육의전의 금난전권이 폐지되고 외국산 포목류가 다량 수입됨에 따라 품목별로 나뉜 각전 도중의 존립 기반도 소멸했다. 이에 누대에 걸쳐 종로 시전가에서 포목을 취급하던 상인들과 개항 이후 객주 영업을 통해 성장한 신흥 포목상들이 결집하여 경성포목상조합(京城布木商組合)을 조직했다. 주요 임원은 박승직(朴承稷), 김윤면(金潤勉), 백윤수(白潤秀) 등 경성부내 유력 포목상들이었고 조합 사무소는 서린동 74번지에 있었다.
경성포목상조합은 표백가격 협정, 경품부 대매출, 공휴일 엄수, 미터법 시행, 조합원 및 종업원 연합 운동회 개최 등 조합원의 이익을 옹호하고 조합원을 계몽하는 활동을 벌였으며, 고종과 순종의 국상 때에는 전례에 따라 상여대를 조직하였다. 또 1929년에는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경성방직주식회사 제품을 일괄 판매하기도 하였다. 1940년 일제의 전시 경제통제 정책에 따라 경성직물소매상조합으로 개칭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한동안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