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됨으로써 군인들은 새로운 생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서울 거주 군인들 중에는 퇴직금조로 받은 소액의 자금을 밑천 삼아 장사를 시작하거나 몇 사람이 모여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한공업회는 대규모 자본을 모아 대(大) 공업회사를 설립하자는 취지로 결성되었다. 회장은 토포사 윤영렬(尹英烈)의 아들로 육군 기병 부장(副將)이던 윤치성(尹致晟)이었고, 발기인은 임재덕(林在德), 김선호(金善浩), 이숙원(李淑元), 장석조(張錫祚), 신규식(申圭植), 조철희(趙轍熙), 상호(尙灝), 정진홍(鄭鎭弘), 정인환(鄭寅煥), 박문병(朴文秉) 등이었다.
대한공업회는 9월 5일의 창립총회 직전에 발표한 취지서에서 “본인 등은 일찍이 군무(軍務)에 종사하던 자라 공업 발명의 경험이 없으나 그것이 민국(民國)에 긴급한 관계됨을 잘 알 뿐 아니라 국가의 배양하신 공효로 신체의 건강력을 얻었은즉 화살통을 버리고 말 안장을 푸는 날을 당하여 일제(一齊) 단합력으로 공예에 종사하여 인민의 이익과 국가의 부강을 기도함”이라고 했다.
대한공업회는 활동 자금으로 2만원을 모았으나 공업회사 설립에는 이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