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83년 부산에 설치된 수출·수입품에 대한 관세 업무를 담당한 기관.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부산해관은 1883년 7월(또는 11월) 3일 본정 2정목(현, 중구 동광동 2가)에서 개청하였다. 1885년 현 부산데파트(중구 중앙대로 29번길 3, 동광동 1가 1) 자리에 목조 2층 청사와 보세창고 1동을 지어 이전하였다.
1907년 부산세관으로 개칭되었으며, 1911년 8월(또는 1910년 11월) 현재 부산본부세관이 위치한 부근에 4층탑이 있는 붉은 벽돌 2층의 새 건물이 준공되었다.
1970년 7월 관세청이 발족하였으며, 1980년 6월 관세청 관하 부산본부세관으로 승격하였다.
기능과 역할
해관 운영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총세무사를 통해 각항 세무사(해관장)에게 지시하는 것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각항 감리를 통해 세무사에게 지시하는 이원적인 체계였다. 해관에 대한 감리의 영향력은 해관의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해관장은 1대 Lovatt(영국), 2대 Piry(프랑스), 3대 Hunt(영국) 등이다. 1906년 7대 야마오카 요시고로[山岡義五郞]부터 1945년까지는 일본인 세관장이었다. 1883년 부산해관 개청 당시에는 서양인 외에 중국인, 일본인도 근무하였다.
해관 직제는 징세부와 해무부로, 징세부는 다시 내반과 외반으로 나누어졌다. 내반에는 방판 · 서기 · 잡원, 외반에는 총순 · 검사관 · 검사관보 · 검사관시보 · 감시 · 잡원이 있었다. 해무부는 항무국[理船廳]과 항무장이 있었다.
해관장은 관세, 재정수입, 회계, 직원 실태, 관내 동향, 밀무역, 외국 선박, 재산 등 상황을 총세무사에게 보고하였다. 해관은 수출입 관리, 관세 징수의 주 업무 외에 선박 입출항, 보세창고, 개항장 관리, 어장 인허가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DESPATCHES from FUSAN CUSTOMS 1893~1897』 Ⅰ, Ⅱ(관세청, 2013)
- 『부산세관백년』(부산본부세관, 태화출판사, 1984)
- 「조선 개항장 감리서의 성립 과정(1883~1886)」(민회수, 『동북아역사논총』 36, 동북아역사재단, 2012)
- 「근대 부산해관 운영에 관한 사적 고찰」(윤광운, 『국제지역연구』 10-1, 국제지역학회, 2006)
- 「부산해관 개청과 초대해관장 W. N. Lovatt」(김재승, 『국제무역연구』 9-2, 한국국제무역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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