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상해거류조선인회는 1933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친일 한인 교민 단체이다. 윤봉길의거 이후 일본이 한인들을 통제하고 일본 총영사관의 정책을 수행하는 행정 보조 기구로서 조직되었다. 주요 활동은 한인 2세에 대한 식민지 교육, 상해 지역에 대한 일제의 지배 정책 협력, 친일 인사의 포섭·확대 등이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일제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고 조선총독에게 감사 편지와 금일봉을 받기도 했다. 1941년까지 활동하고 상해일본인거류민단에 합병되었다. 이후 후계 단체인 계림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단체는 한인들을 내선일체운동에 동원하였다.
정의
1933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친일 한인 교민 단체.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41년 이후 조선 국내의 내선일체 및 황국신민화운동의 영향은 국외에도 파급되었다. 그 결과 상해를 비롯한 중국 등지에서도 내선일체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조선인회’ 등의 민족적 분위기를 풍기는 단체들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상해거류조선인회는 1941년 3월 상해일본인거류민단에 통합되었으며 한인들의 자치 업무도 이 단체에 인계되었다. 조선인회가 일본인거류민단에 합병된 후 후계 단체인 계림회(鷄林會, 1941∼1945)가 결성되었다. 계림회는 한인간의 친목 도모를 명목으로 설립되었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한인들을 내선일체운동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계림회는 일제의 내선일체운동에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모양을 갖추기 위해 조직된 단체였다. 이와 같이 상해거류조선인회는 비록 내선일체를 위해 해체되었지만 그 조직적 기반은 계림회로 계승되었다.
기능과 역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상해의 일본인거류민단과 더불어 일본군 후방 지원 활동을 수행하였다. 매일 수백 명의 한인들이 조선인회의 지휘 하에 군수품을 운반하거나 임시 비행장 및 진지 구축 노역에 동원되었다. 피난 일본인을 위한 식량 운반, 통역, 운전사 자원 혹은 정보 수집, 사망자 및 부상자 수용과 보호, 시가지 청소 등을 담당하였다. 또한 조선인회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혼잡 속에 피난민을 가장하고 잠입하는 한인 독립 운동가들을 경계하였다. 나아가 일본인 자경단과 협력하여 항일적인 한중 민중들을 탄압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조선인회는 일제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일본 외무성뿐만 아니라 미나미 지로(南次郞) 조선총독으로부터도 감사편지와 금일봉이 증여되었다.
조선인회의 일본군 지원 활동은 1938년 중일전쟁이 장기화된 후에도 국방헌금모집운동 등을 통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인회는 상해, 나아가 중국 화중 지역 전체 한인에 대한 ‘중추 지도 기관’을 자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로부터도 “화중·화남 지역에 친일의 모체가 탄생했다”는 극찬의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근현대 중국관내지역 한인사 연구』(김광재, 경인문화사, 2015)
- 『상해한인사회사(1910-1945)』(손과지, 한울, 2001)
- 「‘상해거류조선인회’(1933-1941) 연구」(김광재, 『한국근현대사연구』 제35집, 한국근현대사학회, 2005)
- 『關內地區朝鮮人反日運動資料彙編』上冊(楊昭全 編, 沈陽: 遼寧民族出版社, 1987)
- 『上海居留民團三十五周年記念誌』(上海居留民團 編, 上海: 大陸印刷社, 1942)
- 『在支半島人名錄』 第三版(白川秀男, 上海: 白川洋行印刷部,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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