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상해대한교민단은 1919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설립된 한인 교민 단체이다. 1918년 상해고려교민친목회가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으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상해대한인민단으로 개칭하였다. 1920년 다시 상해대한인거류민단에 이어 상해대한교민단으로 개편되었다. 1929년 김구가 교민단장이 되면서 프랑스 조계 공동국에 청원하여 매년 보조금을 받는 등 독립운동 기관으로의 성격이 강해졌다. 거류민의 호구와 자산 조사 활동, 각종 기념식과 환영회, 강연회, 강습회,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 조직인 의경대 운영, 독립운동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34년 해체되었다.
정의
1919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설립된 한인 교민 단체.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교민단은 1920년대 후반에 들어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약화되었다. 1929년 8월 29일 임시정부의 김구(金九)가 교민단장이 되면서 업무가 개선되었다. 교민에 대한 호구조사, 자산조사 등을 실시하였으며 아울러 공산주의 세력을 배척하고, 자파의 세력 신장에 주력했다. 특히 교민단은 프랑스 조계 공동국에 청원하여 매년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교민단이 독립운동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게 되자 다소의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교민단은 1932년 4월 윤봉길의거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상해를 탈출하면서 약화되다가 1934년 해체되었다.
기능과 역할
그 외에도 교민단은 많은 행사를 치렀다. 교민단이 주최한 행사에는 각종 기념식과 환영회, 강연회, 강습회, 추도회 등이 있었는데, 물론 그 가운데에는 임시정부의 직할 조직이었기 때문에 맡은 행사도 많았다. 기념식에는 신년 축하식, 3·1독립선언식, 어천절(御天節) 기념식, 건국 기념식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어천절은 단군의 승천(昇天) 기념일로서 음력 3월 15일에 행해졌다. 이 행사는 대종교(大倧敎)의 행사이기도 했으나, 교민단이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주최하였다. 그리고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절 행사의 일환으로서 건국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교민단은 다양한 강연회와 강습회를 개최했다. 그 가운데 임시정부 시책에 대한 강연회가 시국 강연회의 형식으로 여러 차례 열렸다. 시국 강연회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들이 교민들에게 국정을 보고하는 자리이자 그들의 지지를 구하는 기회였다. 또 교민단은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상해에 도착할 경우 열렬한 환영회를 개최했다.
이와 함께 교민단은 교민을 위한 계몽적인 강연회도 많이 개최하였다. 한국어 장려에 대한 연설회와 강습회, 위생에 대한 강연회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외에도 교민단은 국내외에서 순국한 독립운동 지사들의 추도회도 개최했으며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많은 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국내외 동포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교민단은 상해 동포 사회의 치안 유지 활동도 전개하였다. 교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확보해야 하는 교민단으로서는 외부 세력의 침투를 방지하는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1923년 말 교민단 산하에 일종의 경찰 조직인 의경대(義警隊)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독립신문(獨立新聞)』
- 『동아일보(東亞日報)』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1-관련단체 Ⅰ(국사편찬위원회, 2009)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편, 1976)
- 『상해한인사회사(1910-1945)』(손과지, 한울, 2001)
- 『중국관내 한국독립운동단체 연구』(김희곤, 지식산업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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