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세 시위는 3월 7일에 일어났다. 옥상면(玉尙面) 삼하동(三下洞)에 살던 박경득(朴擎得)이 김시항(金時恒)과 함께 시위를 준비했다. 당일 옥상면 삼하동, 삼상동(三上洞), 당목동(棠木洞)에서 약 50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 두 사람은 3월 31일에 다시 삼하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4월 2일에도 박경득과 김시항이 주동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 날 삼하동, 삼상동, 당목동에서 출발하여 낮 12시에 옥상면사무소 앞에 운집한 시위 군중은 3000여 명에 달했다. 김시항과 박경득은 면 직원인 최영균(崔英均) 등에게 ‘우리는 이미 독립을 선언했으니, 오늘부터 면사무소를 폐지하고 새로 조직할 자치민단에 면사무소와 비품, 재산 등을 넘기라’고 압박했다.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각종 비품과 문서철 7책, 현금 193원 15전을 압수했다. 이후 10여 일간 자치민단이 면의 사무를 집행했다.
의주군의 시위를 주도한 박경득과 김시항의 출신이나 전력 등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런데, 4월 2일 옥상면의 만세 시위처럼 주동자와 군중이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자치민단을 꾸려 10여 일 간 자치를 실시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