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 3·1운동

  • 역사
  • 사건
  • 일제강점기
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하순에 걸쳐 황해도 장연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김정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9년 3월 11일부터 4월 하순에 걸쳐 황해도 장연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내용

최초 시위는 3월 11일 장연면 장날에 일어났다. 오후 1시에 여현구(呂鉉九), 강예봉(姜禮鳳) 등 천도교인의 주도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경찰이 주동자를 체포하자 시위 군중 200여 명은 경찰서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시장을 폐쇄하고 여관을 뒤지며 단속을 벌였다. 장연면의 시위는 다음 장날인 3월 16일에도 이어져 3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4월 11일에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4월 5일에 속달면 상태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는 1000여 명이 참가했다. 보통학교 학생과 서울로 유학 갔다가 무기휴학으로 귀향한 여학생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4월 8일과 11일에는 후남면 남호리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남호리의 남창 장날인 11일에 일어난 시위에는 1200여 명이 참가했다.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 문을 부수고 면서기를 구타했다.

4월 16일에는 용연면 도경리에서, 18일에는 대구면 송천리에서, 22일에는 해안면 몽금포리에서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몽금포리 시위에서는 100여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경찰의 발포로 해산했다.

의의와 평가

장연군의 만세 운동은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에 걸쳐 오랜 기간 동안 일어났으며, 천도교와 학생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장연면, 속달면 상태탄리, 후남면 남호리, 용연면 도경리, 대구면 송천리, 해안면 몽금포리 등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였으며, 1000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수차례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 『3․1운동Ⅰ-중부․북부』(김정인·이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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