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는 3월 13일 신하리 장날에 일어났다. 정평면과 주이면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들은 한장번(韓壯蕃)이 여러 동지를 모아 주동했다. 오후 1시 한장번의 만세 선창으로 시작된 만세 시위가 신상리와 신포리로의 시가행진으로 이어지면서 시위 군중은 4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오후 6시 시위 군중은 자진 해산했으나 밤늦게 신상리와 신포리에서 다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신하리에서는 9시 반쯤 기독교회에서 15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 시위를 벌이고 행진했다. 10시가 넘자 시위대는 5000여명을 넘어섰다. 신상리에서는 밤늦게 수백 명의 군중이 헌병주재소를 습격했다. 헌병의 발포로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만세 시위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정평군 춘유면의 독립 만세 운동은 3월 13일 단 하루 동안 발생한 시위였다. 그러나 신하리와 신상리, 신포리를 포괄하여 5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한낮에 시작되어 야간으로 이어졌다가 사상자를 내며 다음날 새벽에야 막을 내린 격렬한 시위였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