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석(韓亨錫)은 191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국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한 한유한(韓悠韓)이라는 이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 한흥교(韓興敎)를 따라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上海〕에서 성장하였다. 상하이에 있는 신예(新藝)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39년 10월 충칭〔重慶〕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가 결성될 때 이에 합류하였다. 전지공작대 예술조장을 맡은 한형석은 다양한 독립군가와 연극을 창작하였다. 군가인 「한국행진곡(韓國行進曲)」, 「항전가곡(抗戰歌曲)」 등을 작곡하였으며, 「국경의 밤」, 「아리랑」 등을 공연하여 중국군과 일반 대중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40년에는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中央戰時幹部訓練)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特科總大學員隊) 한청반(韓靑班)에서 교관을 역임하였다.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으며, 한형석은 『광복군가집』 1, 2집을 발간하고 「국기가(國旗歌)」, 「광복군 제2지대가」, 「압록강행진곡」, 「조국행진곡」 등 항일 가곡을 작곡하였다.
1944년 10월 한형석은 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에 선임되어 복무하면서 작곡 및 가극 활동으로 침체된 항일 정신을 고취하고 광복군과 중국군 연합전선을 한층 견고히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