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화개산(華蓋山)에 있었던 사찰이다. 건립 시기는 알 수 없고, 자세한 연혁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강화도와 교동도가 무신 집권기에는 폐위된 국왕의 유배지로 활용되었고, 대몽항쟁기에는 고려의 천도지 였다는 점, 그리고 화개산을 중심으로 여러 사찰과 향교가 들어서 있다는 정황 등으로 보아 늦어도 고려 후기에는 절이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690년에 찬술된 『강도지(江都志)』에는 고려 말의 학자 이색(李穡, 1328∼1396)이 이곳을 수행처로 삼았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이 책이 편찬될 때에는 이미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인 17세기 쯤 이 사찰이 폐사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는 이곳에 채석장이 조성되면서 절터의 흔적 마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