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사(逍遙寺)의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위덕왕 때 소요(逍遙)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경덕왕 때 연기(緣起)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연기는 변상도가 있는 『화엄경사경(華嚴經寫經)』(755)을 제작한 승려이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창했다고도 하며, 고려 때 강감찬(姜邯贊)이 기도한 곳이라고도 하나 사료로 확인된 바는 없다. 자세한 연혁이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부터인데, 1583년(선조 16)에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이 절을 중건하여 수행하며 후학을 길렀다고 한다. 백제 위덕왕대 소요 창건설은 16세기 소요태능의 사찰 중건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소요에 이어 1644년(인조 22)에는 허기(虛機)가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871년에서 1895년의 시기에 작성된 『호남읍지(湖南邑誌) 』에는 절 이름이 소요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 전기에 폐사되었던 사찰이 16세기에 중수되었다는 점, 그리고 17세기 전반까지 유지되다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사이에 또 한 번 폐사되었고, 이후 19세기 무렵에는 암자의 형태로 사세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소요사는 1950년 6·25전쟁 때에도 폐사의 위기를 겪었는데, 1961년 현학(玄鶴)이 대웅전을 중창하여 사세를 일으켰고, 1970년에는 주지 정덕진이, 1975년에는 주지 전동진이 대웅전과 요사를 중수하고, 종각과 칠성각을 새로 지어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후 1990년대에도 중창을 지속하였다. 현재 사찰에 봉안된 탱화는 모두 1961년 이후에 조성된 불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