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주의는 서구의 독특한 철학적 배경에서 발전하였다. 다문화주의를 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 파레크(Parekh, 2006)에 따르면, 서구의 다문화주의 이론은 도덕적 일원론에서 시작해서 도덕적 다원성을 인정하고 인간과 문화의 중요한 관계를 인식하는 데까지 순서대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는 서양의 다문화주의는 강한 자유주의적인 특성을 띠고 있어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되 자율성을 제공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문화를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현대 다문화주의 이론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킴리카(Kymlicka, 1995)는 기존의 자유주의와 국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서 개인, 정체성 집단, 국가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원리로 다문화주의를 제안하였다. 그의 다문화주의 시민권 개념은 개인을 단지 동일한 권리를 가진 존재뿐만 아니라 정체성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차별적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즉, 기존의 시민권 개념이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만을 상정했다면 다문화주의 시민권은 정체성 집단을 매개로 개인과 국가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정체성 집단의 구성원들은 국민국가의 문화, 정체성과 구별되는 별도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질 권리를 갖는 것으로 인식한다.
다문화주의가 현대 서구사회의 사회이념과 정책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인구학적 변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성장, 저출산 ·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개발도상국들로부터 노동이민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급속한 비서구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은 거주국의 인구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심지어 국가 정체성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서구 국가들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념을 통해 신규 이민자들을 기존의 사회구조에 통합시키고자 하였다.
다문화주의는 폭넓고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하는 이념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한 사회 내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집단들의 문화를 단일한 문화로 동화시키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이념체계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과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다문화주의는 한 사회의 국가 형성 방식, 역사적 경험, 인구학적 특성, 민주주의 발전 수준 등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학자마다 서로 다른 유형을 제시하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집단의 권리를 어느 정도 허용하느냐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집단의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온건 다문화주의, 자유주의, 문화적 다문화주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집단의 사회권을 인정하고,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 조치를 취하는 경우이다. 로페즈의 복지적 다문화주의, 세키네 마사미와 구견서의 조합적 다문화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가장 높은 수준의 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집단의 고유한 문화권과 자치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에는 마르티니엘로의 강경 다문화주의, 맥래런의 비판-저항적 다문화주의, 세키네 마사미, 구견서, 나장함의 비판적 다문화주의가 해당한다.
다문화주의의 성과에 대해서는 찬성론자와 비판론자 사이에 큰 견해차가 있다. 비판론자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문화주의가 문화를 고정되고 폐쇄된 것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문화적 차이로 환원하고, 소수자집단에 대한 정부의 교묘한 관리 정책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문화주의가 문화 간 차이를 인정하는 수준에 그치고 문화 간 상호이해와 소통에 소홀하고 이민자와 소수자집단의 사회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비판이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과거의 명백하게 인종차별적이고 동화주의적 정책과 비교해서 개선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다문화주의적 이념과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률과 프로그램들은 인종, 민족 간 기회의 형평성을 이룩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