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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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지담대사가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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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지담대사가 창건한 사찰.
내용

금룡사(金龍寺)는 1865년(고종2)에 지담대사가 포천의 영중면 금주산(568m) 중턱에 세운 사찰이다. 승려 지담은 위태로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홀로 암자를 짓고 수행하기 위해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는 작은 암자로 출발했는데 1970년대 승려 지해의 중창 불사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지해는 1970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고 연이어 미륵대불을 조성하였으며 암벽을 파내어 천불을 안치하였다. 금룡사가 위치한 곳은 금주산 중턱의 좁은 산기슭이다. 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절벽에 덧대고 절벽 사이에 다리를 놓아 공간을 확보하였다. 건물을 지을 터를 인위적으로 마련한 후 그 위에 15칸 규모의 대규모 미륵전을 건립하였다. 미륵전 뒤편으로는 높이 18m의 대형 미륵불 입상이 세워져 있다. 금주산 서쪽을 향하고 있는 이 미륵불은 앞을 지나는 43번 국도에서도 매우 잘 보여 지역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금룡사의 중창 불사는 근래까지 이어져 산신을 모신 산왕전을 비롯해 칠성각, 용왕각, 독성각 등이 조성되었다. 한편 금주산에는 궁예와 관련된 구비전승이 전한다. 궁예가 태봉국 도성에서 왕건에게 쫓겨난 후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이후 궁예는 자신을 따라온 궁인들과 함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닥나무를 심고 한지를 만들었다고 설화는 전한다. 금룡사의 원래 이름은 금주사였으나 인근에 작은 암자가 들어와 금주사라 칭하자 금룡사라 개칭하였다.

참고문헌

『포천군지』(포천군지 편찬위원회, 2007)
『문화유적분포지도: 포천시』(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2004)
『경기북부와 북한강』(돌베개, 1997)
집필자
정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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