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의 남천리에 있었던 절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사원이 존재했다고 전하며 남천사(南泉寺)를 방문했던 남유용(南有容)의 시를 통해서 18세기까지 명맥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주목사(忠州牧使)를 역임한 남유용이 조선조 영조대에 지은 시 중에는「동생들을 보내고 남천사에서 노닐다(送弟兒輩遊南泉寺)」가 있으며, 또 다른 시인 「공무 없이 소헐루에서 한가롭게 앉아있으면서(少歇樓燕坐無公事)」에는 "시승인 체소가 남천사에 주석하고 있다(詩僧體素居南泉寺)"는 내용이 있다. 두 편의 시를 통해 볼 때 남유용이 살았던 당시에까지 남천사가 존속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남천사지는 ‘남천삿골’, ‘절골동’, ‘남천사동’, ‘남천동’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폐사된 이후에는 탑만 남아서 ‘탑골동’, ‘탑동’으로도 불리었다. 사역(寺域)에는 몇 채의 민가가 인접해서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평탄한 밭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면을 동으로 한 지세로 앞쪽에는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사역은 약 300평 정도로 근래 지어진 민가와 탑의 뒤편 5m 지점에 묘 1기(基)가 있다. 묘의 조성 당시 노출된 방형의 자연석 초석(礎石)이 묘의 옆에 남북으로 놓여있어 이곳이 건물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북쪽의 평탄한 밭에도 높이 1.5m 내외의 석축(石築)이 30m가량 남아 있고 계단의 흔적도 남아 있다. 밭의 상단에는 초석으로 보이는 방형의 자연석과 조선시대의 기와 조각들이 있어, 이곳에도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지역과 규모로 볼 때 금당지로 추정된다. 남천사지에 남겨진 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3층 석탑은 화강석으로 조성된 탑이며, 현재 높이는 306cm이고 2층의 기단과 3층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규모의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