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군에 있었던 사원이다. 1378년(우왕 4) 10월에 왜구가 전라도의 영광(靈光)·광주(光州)·동복현(同福縣) 등을 침략했을 때 도순문사(都巡問使) 지용기(池湧奇)와 순천병마사(順天兵馬使) 정지(鄭地) 등이 추적하자 왜구가 미라사(彌羅寺)로 들어갔다. 고려 군대가 포위하고 불을 질러 적들을 태워죽이고 포획한 말이 100여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1457년(세조 3) 7월에는 미라사의 승려 혜명(惠明)이 고을 사람 수십 명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상소하고 그 참여자들의 명단을 바쳤다. 임금이 병조참판(兵曹參判) 구치관(具致寬)과 대사성(大司成) 안지귀(安知歸)에게 이 사건을 국문(鞫問)하게 하였는데, 미라사의 혜명이 주장하기를 승려 의전(義田)과 최한량(崔旱兩) 등이 상왕인 단종(端宗)을 복위하려는 반란을 꾀하고 있으며, 담양의 향리(鄕吏)와 관노(官奴) 등이 조정에서 수박(手搏)으로 무사를 뽑는다는 핑계로 몰래 용사(勇士)를 뽑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혜명이 의전·최한량 등과 사이가 좋지 않아 거짓 고발한 것으로 밝혀져 혜명을 참형(斬刑)에 처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볼 때 미라사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한 사원임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