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었던 사찰로 계룡산 비로봉 아래의 산 중턱에 남매탑이라 불리고 있는 석탑 주변이 절터이다. 사찰의 이름은 ‘청량사(淸凉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확인되었다. 동학사(東鶴寺)가 창건되던 724년(성덕왕 23)에 회의(懷義) 화상이 스승이 입적한 곳에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한 후 왕족 한 사람이 이곳에서 토굴을 짓고 수도 하던 중 한밤중에 나타난 호랑이의 목에 박힌 사람 뼈를 빼주고 이후에는 다시 잔인한 일을 하지 말라고 깨우쳤다고 한다. 그 다음 날 다시 나타난 호랑이는 젊은 여자를 납치해와 던져 놓고 갔다. 그 여자는 경상북도 상주 사람으로 결혼식 날에 방이 더워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때마침 깊은 겨울이라 눈이 쌓여 어쩔 수 없이 수개월을 함께 살다가 봄이 되어 눈이 녹자,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힌 채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여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호랑이에게 납치되었으나 다행히 살아 돌아온 것은 하늘이 정한 인연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부부가 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록 수개월을 함께 살았지만 조금도 범한 바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말을 믿지 못해 관아에 소송까지 했지만 결국 사실이 밝혀져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딸은 시집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왕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남매의 연을 맺고 함께 수도하였다. 두 사람이 죽은 후에 사리가 나와 각각 탑을 세워 봉안하였는데 이 탑을 남매탑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절터에는 1998년 각각 보물로 지정된 청량사지오층석탑과 청량사지칠층석탑이 있는데, 속칭 '계룡산남매탑'이라고도 불린다. 칠층석탑은 북쪽에 있고, 오층석탑은 남쪽에 있는데 두 탑 모두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석탑의 서로 다른 두 양식을 각각 보여준다. 탑의 앞쪽 터에서 거북 모양의 주초석 20여 개가 수습되었고, 탑 옆에는 석재가 남겨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석조연화대와 여래좌상편(如來坐像片) 등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두 탑을 중심으로 사찰의 배치를 추정하면 절은 남북을 축으로 하고 있고 탑의 북쪽에는 금당이, 서쪽에는 요사 등의 부속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