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비슬산에 있었던 사찰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1040년 최제안(崔齊顔)이 작성한 「신서(信書)」에 언급되고 있어 이 절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고려 전기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최제안이 천룡사(天龍寺)를 중창하면서 천룡사 주지 선발과 관련해서 선례로 삼았던 사원이 바로 도선사(道仙寺)이다. 그가 천룡사를 중건하면서 1040년(정종 6)에 작성한 「신서」에 의하면, 국가가 주지를 파견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교체 때마다 사원의 승려들이 안심할 수 없는데, 공산(公山) 지장사(地藏寺)와 비슬산 도선사, 서경(西京) 사면(四面)의 산사(山寺)의 경우 해당 사원의 승려 중에서 주지로 임명하게 한 선례가 있으므로 이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이들 사원이 자체적으로 주지를 뽑을 수 있었던 것은 특정 가문이나 개인이 해당 사원에 일정한 토지를 시주하여 해당 가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도선사의 경우 이러한 토지가 20결(結)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창건이나 중창 때 특정 가문이나 개인과 연계되어 주지 임명이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자체적으로 행하는 사원을 소위 법손사원(法孫寺院)이라고 부르는데, 도선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