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만세암 ( )

불교
유적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었던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암자.
이칭
이칭
만수암(萬壽庵)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었던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암자.
역사적 변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시대 창건되어 1860년대 폐사되었으며 사원의 규모가 크고 승려의 수가 수천 명이나 되어 만세암(萬世庵)의 쌀 씻은 물이 10리까지 흘러갔다고 한다. 또한, 평양감사를 지낸 바 있는 풍천(豊川) 임씨(任氏)의 무덤이 만세암 뒤로 모셔진 후 사원이 폐사되었다고도 한다. 한편 조선 후기의 문인인 오숙(吳䎘, 1592~1634)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 머물면서 「만수암에서 시축의 운에 차운하여 혜희선자에게 주다(萬壽庵 次詩軸韻 贈惠煕禪子)」란 시를 지었는데, 이 시기 만세암을 직접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용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묘막리 만수동에 있었던 암자로 만수암(萬壽庵)이라고도 한다. 묘막리 마을 전체가 만세암 터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모두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어 절의 구역을 정확히 알 수 없고, 건물의 규모를 추정할 만한 주초석 등도 확인되지 않는다. 주위에서 깨어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으며, 다완과 청화백자·분청사기 조각 등이 농경지 곳곳에서 수습되고 있다. 또한, ‘山口’명 백자가 출토되었는데 일제강점기까지 사원이나 거주지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천파집(天坡集)』
『한국사지총람』상권(문화재청, 2010)
『불교사원지』하권(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1998)
『사지』(충청북도, 고려서적주식회사, 1982)
『한국사찰전서』(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