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적사(廣積寺)는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었던 사찰이다. 사찰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간행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고려 우왕 때 이성계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광적사에 대한 기록은 1530년(중종 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1799년(정조 23)의 『범우고(梵宇攷)』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18세기 중반 영조 때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에 이 사찰에 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여지도서』 함경남도안변도호부읍지(咸鏡南道安邊都護府邑誌) 석왕사(釋王寺)조에는 광적사와 관련된 내력이 간략하게 적혀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1377년(우왕 3) 동북면 도원수 이성계(李成桂)가 강서(姜筮), 홍징(洪徵), 유원(柳源), 정몽주(鄭夢周), 이화(李和) 등과 함께 청주(淸州: 지금의 北淸郡)에 갔을 때 해양(海陽 : 지금의 吉州郡) 광적사에 대장경 1부와 불상, 법기(法器)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 절이 병화로 인해 승려가 죽고 절이 훼손되어 크나큰 보배들이 거의 다 손실되기에 이른 것을 측은히 여겨 중랑장(中郞將) 김남련(金南連)을 보내 훼손된 성보들을 배에 실어와 그 손실된 함(函)과 축(軸)을 보수하고 전 부분을 완성하였다. 또한, 이성계는 이것들을 안변의 석왕사(釋王寺)에 보관하고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복을 기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