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사(大雲寺)의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전기인 1048년(문종 2) 3월 어사대(御史臺)에서는 문종에게 “일체의 토목 공사는 3년 동안 정지하라고 하셔서, 온 나라가 기뻐하며 모두 덕음(德音)에 감격하였는데 끝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신의는 나라의 큰 보배로서 버릴 수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운사와 대안사(大安寺)의 역사(役事)는 모름지기 농한기를 기다려서 하소서.”라고 아뢰었다. 이에 문종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대운사의 역사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 기록을 통해 보았을 때 대운사는 고려 문종대 크게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운사는 고려 초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이는 1064년(문종 18)에 문종이 “대운사는 선대 임금이 처음 창건해 나라를 위해 복을 빌었다. 지급한 공전(公田)이 땅이 척박하고 세입이 적어 공양 물자가 부족하니, 양전(良田) 100경(頃)을 더 주어라.”라고 명령 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1078년(문종 32) 4월 21일에는 송나라 황제의 생일을 맞아 대운사와 동림사(東林寺)에서 축수재(祝壽齋 )를 베풀었다. 각종 궁과 문을 수비하는 위숙군의 종류를 기록한 『고려사』 지(志)의 기록에 따르면 대운사에는 안화사(安和寺) 진전(眞殿)·홍원사(弘圓寺) 진전·흥왕사(興王寺) 진전·천수사(天壽寺) 진전과 더불어 산직장상(散職將相) 2명이 숙위하였다고 한다. 이 밖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