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선암사 ( )

목차
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의 사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의 사찰.
내용

개성 선암사(仙巖寺)에 관한 사항은 『고려사(高麗史)』에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인 1308년(충선왕 복위년) 10월 충선왕은 궁궐 중문에 다음과 같은 방을 붙이게 하였다. “왕륜사(王輪寺) 주지 인조(仁照), 용암사(龍岩寺) 주지 용선(用宣), 선암사 주지 약굉(若宏) 및 최단(崔湍)·권한공(權漢功)·김지겸(金之兼)·김사원(金士元)·최성지(崔誠之)·환이(桓頤)·오현량(吳玄良)·강방언(姜邦彦)·이진(李珍)·강융(姜融)·조통(趙通)·조적(曹頔)·조석(曹碩)·최현(崔玄)·정자우(鄭子羽)·최중공(崔仲公)·문점(文坫)·이백겸(李伯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특별히 부르지 않는 한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여기서 언급된 권한공이나 김지겸, 최성지 등은 대부분 충선왕이 복위한 이후 요직을 차지했던 국왕의 측근 세력이었다. 이러한 왕의 측근 반열에 선암사의 주지였던 약굉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당시 이 사찰이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음을 추정케 해준다. 충선왕대 이후의 선암사에 관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한국불교사찰사전』(이정, 불교시대사, 1996)
『한국사찰사전』상권(권상로, 이화문화출판사, 199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