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그 수도인 개경의 송림현(松林縣)에 있었던 사찰이다. 창건이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고 다만 『고려사(高麗史)』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과 같은 몇몇 문헌에 절과 관련된 사항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7년(1320)에 왕이 측근과 더불어 선흥사(禪興寺) 앞에서 타구(打毬: 격구놀이)를 했다고 하며 충숙왕 17년(1330)에는 관직에서 물러난 방신우(方臣祐)가 매우 웅장하고 화려하게 이 사찰을 중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려 후기의 문신인 권단(權㫜)이 말년에 출가한 곳도 선흥사이다. 조선시대의 『태종실록(太宗實錄)』 1410년(태종 10) 4월 8일 기사에는 왕이 선흥사의 탑을 개경사(開慶寺)로 옮기라고 명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이 절의 옛터가 동교(東郊)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문헌 기록들을 참고하면, 선흥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전기에까지 사찰의 명맥이 이어졌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기 이전 시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