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백사(堗白寺)의 창건 기록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후기에 승려 일연이 찬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삼국유사』 신주(神呪)편의 명랑신인(明朗神印)조에서는 돌백사의 주첩(柱貼) 주각(注脚)에 적힌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경주 호장 거천(巨川)의 어머니는 아지녀(阿之女)이고 아지녀의 어머니는 명주녀(明珠女)이며 명주녀의 어머니는 적리녀(積利女)인데, 그 아들은 광학대덕(廣學大德)과 대연삼중(大緣三重)으로 형제 두 사람이 모두 신인종(神印宗)에 들어갔다. 장흥(長興) 2년 신묘에 태조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왕을 따라다니며 향을 피우고 수도하였다. 태조는 그 노고를 포상하여 두 사람의 부모 제사에 쓸 비용으로 전답 몇 결을 돌백사에 주었다.” 신인종의 승려 광학과 대연은 밀교의 비법으로 해적을 물리쳐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인물이다. 따라서 당시 개성에 있었던 돌백사는 신라 밀교 종파인 신인종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고 있었던 사찰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후의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