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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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북한 강원도 회양군 금강산(金剛山)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계청이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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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강원도 회양군 금강산(金剛山)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계청이 창건한 사찰.
내용

도산사(都山寺)는 고려 후기인 1339년(충숙왕 8) 계청(戒淸)이 쌍성총관(雙城總管) 조림(趙琳)의 시주로 창건한 사찰로 왕의 만수를 기원하는 도량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회양도호부(淮陽都護府)조에는 조림이 도산사를 창건한 또 다른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도림사가 자리한 산의 서북쪽에는 높은 고개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곳에 이르면 반드시 방황하거나 풍우를 만나 노숙하는 도중에 병을 얹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산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즉 도산사의 창건 목적은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주인구가 적어서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았던 행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도산사 건축 공사 당시 조림은 ‘승려로서 열심히 교화하지 않고 노는 자는 부처의 죄인’이라고 주장하고 백성들의 참여 없이 승려들이 직접 기술과 사무를 모두 맡도록 했으며 일꾼들의 식량과 자재도 자신의 사재로 충당하였다. 조림은 사찰에 기와를 얹을 때 자기 집의 기와를 벗겨다가 덮기도 하였다. 또한 봄과 가을에 곡식을 배로 실어 와서 이 절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그 나머지는 산중의 여러 절에 나누어 주어 겨울과 여름의 식량에 충당하게 했는데, 도산(都山; 산의 우두머리)이라는 사찰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도산사에 대한 구체적인 창건과 연혁은 1530년(중종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하다. 조선 후기인 1799년(정조23)에 편찬한 『범우고(梵宇攷)』에는 도산사가 이미 폐사된 것으로 나와 있다.

참고문헌

『범우고(梵宇攷)』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불교사찰사전』(이정, 불교시대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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