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高麗史)』에서는 등암사(藤巖寺)로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범우고(梵宇攷)』에는 등암사(燈巖寺)라 언급하고 있어 다소의 혼란이 있다. 그러나 권상로가 저술한 『한국사찰사전』에서는 두 사찰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동일한 사찰로 이해하였는데, 이후 최근에 간행된 『한국불교사찰사전』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따르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1329년(충숙왕 16)과 1338년(충숙왕 복위 7)에 왕이 백주(白州)의 등암사에 행차하였다고 한다. 한편 조선 전기인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황해도 백천(연백군) 천등산에 이 사찰이 있는데, 고려 공민왕이 탄생한 곳이라 하였다.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에는 “이미 폐사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 기록을 참고하면, 등암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전기에 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는데, 적어도 18세기 말 이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