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창건 시기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폐사된 시기도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사(高麗史)』에 이 절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대략적인 존재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고려 전기인 1102년(숙종 7) 8월에 절을 새로 수리하였다고 하며, 또한 같은 해 9월 숙종이 신호사(神護寺)에 행차하여 대장회(大藏會)를 베풀고 낙성식을 거행했는데, 대궐 뜰에서 절에 이르기까지 도로 양쪽에 수만 개의 연등을 켰다고 한다. 고려시대 삼경(三京)의 하나였던 서경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지금의 평양특별시의 서남쪽 4리에 있는 창광산(蒼光山)에 있었던 사찰이다. 조선 전기인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평양부 불우(佛宇)조에도 신호사에 관한 사항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